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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사사로운 철학

by 하이패스pss 2023.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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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쇼펜하우어의 '삶과 의지로서의 표상'과 니이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매료되었다.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읽었다. 처음에는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적인 철학에 접촉했고, 그를 이해하고 넘어서려면 니이체를 배워야 한다는 이야기에 이끌려, 니이체의 초인론을 찬양하는 문구들을 일기장에 써놓았다.

 

"시들어간 낙엽에서 어찌 슬픔을 찾을 수 있는가, 그리고 시들어져 간 것으로 하여금 그대에게서 재빨리 도망치도록......"

 

니이체의 철학이 거의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 차 있어서, 나만의 해석과 사사로운 철학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했다. 그리고 나는 문학을 꿈꾸게 되었다. 어쩌면, 문학과 삶이란 '현실의 외로움과 절망에서 벗어나려는 반항'이 아닐까? 최근에 EBS에서 이진우 교수님의 니이체 강의를 듣고, 니이체 관련 서적들을 뒤져보면서, 나의 얕은 이해와 무지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아직도 잘 모르는 것이 많다.

신은 죽었다! 기독교인들의 편협함과 고집을 나는 거부했다. 그들이 자신들의 세계만을 강요하고, 그들만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 그리고 예수를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배척하는 비포용적인 태도, 그리고 믿지 않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주장하는 것 모두를 나는 싫어했다. 그리고 그들이 전도라는 명목 아래 비인간적으로 다른 종교의 사람들을 죽이고 정복하는 서구인들의 행동, 그리고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기독교의 이치를 부정하는 그들의 행동을 나는 싫어했다. 니이체는 그런 신을 죽였다. 그것은 나에게 큰 환희였다. 그래서 나는 니이체를 좋아하게 되었다. 이는 고등학교 시절의 이야기다.

 

 



니이체가 '신은 죽었다'라는 말로 전한 것은 더 깊은 진실이 있다. 기독교로부터 받아들인 신이란 단순히 이 세상을 창조한 존재가 아니라, 완전한 존재이며, 우리 삶의 지향점이자 본보기이며, 선과 악, 참과 거짓을 판단하는 진리의 근원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 신이 죽었다는 것은 사실상 그런 가치가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신이 죽은 후에는 허무주의에 빠지게 된다. 이 허무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은 바로 권력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의지는 권력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니이체는 권력에 대한 의지를 세상의 모든 곳에서 찾아낸다. "권력 없이 창조는 없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권력이 필요하다. 아메바부터 고등동물까지, 생명의 근원은 권력에 대한 의지다." 라고 말한다.

권력이란, 내면적으로 보면 의지와 충동의 형태로, 외면적으로 보면 힘의 작용으로 나타난다. 생명에 대한 의지는 결국 권력에 대한 의지로 표현된다.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던 권력을 니이체는 창조적이고 삶을 부추기는 긍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는 기존의 사유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기독교의 사상을 근본적으로 뒤바꾼 것처럼, 니이체는 '최고의 권력자는 사랑을 가진 자'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영원 회귀'를 주장한다. 이 '영원 회귀'는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이다. "너는 지금 살고 있고,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또 다시, 아니 무수히 다시 살아야 한다."라는 것이 영원 회귀의 사상이다. 이 사상에서 주는 교훈은 바로,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순간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라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극도의 비관과 허무주의가 깃든 시대에서, 나의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려면 세 단계의 변신이 필요하다. 니이체는 우리의 "정신이 낙타로 변하고, 낙타가 사자로 변하고, 사자가 아이로 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낙타는 무거운 부담을 견디며 사막을 건너는 인내의 정신과 "너는 해야 한다"라는 도덕적 복종을 상징한다. 사자는 나의 삶을 억압하고 제한했던 모든 쇠사슬을 부술 수 있는 자유로운 정신을 의미한다. 아이는 무한한 긍정의 힘을 가진다. 아이는 자신의 삶을 놀이처럼 받아들이며, 무거운 짐, 영원히 반복되는 삶, 목표 없는 삶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가벼움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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